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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울산

예로부터 일본과의 교통상 요충지이며, 왜구들의 침범이 잦았고 조선 초기에는 염포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장생포하의 고래잡이로도 유명하다. 1962년 시로 승격되었으며, 공해를 줄일 수 있는 지형적 조건과 태화강의 공업용수와 수심이 깊어 대형선박의 입출 항이 용이하며 공업단지로 발전, 1966년에는 특정 공업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정유공장, 자동차 공장, 조선공장 등과 석유화학 제품 공장들이 들어서 우리 나라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발전하였습니다.

 

현대자동차

1967년 12월 설립되어 자본금 1,143억원으로 부지 85만평에 건평 17만평, 종업원18,000명으로 포니, 스텔라, 트럭, 고속버스 등의 차량을 연간 45만대를 생산 2/3을 캐나다, 영국, 쿠웨이트, 칠레, 홍콩 등지에 수출하고 있으며, 최신 시설을 설비하여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 86년 현재는 1분에 승용차 한 대씩 만들어져 하루 약 1,300대가 생산되며, 1987년도에는 40초에 한 대씩 만들어져 일일 약1,500대를 생산할 계획입니다.

 

방어진과 울기 등대

방어진은 조선시대에 염포라 불리며 웅천의 제포, 동래의 부산포와 더불어 왜국을 상대로 개항한 3포 가운데 하나였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방어잡이의 유명한 항구로 이름나 있었으며 인근에는 일산 해수욕장과 울양기 등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장생포 항의 고래잡이

서기 1891년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일본을 가다가 울산만 장생포 앞 바다에서 큰 고래 떼를 발견하여, 귀국 후 태평양어업 주식회사를 설립, 한국 정부로부터 포경권을 얻어 고래를 잡은 것이 시초가 되어, 해방 후부터 본격적인 포경선의 출어로 매년 천 여마리의 고래를 잡아 장생포는 고래잡이 항구로 유명하였으나, 해마다 고래의 수가 급격히 줄어 76년에는 큰고래 76말로 제 많고, 매년 30마리 정도만 잡히는 사양길에 접어들었으며, 제일 큰 고래잡이는 1973년 7월 29일 독도 근해에서 백용주씨가 길이 22m, 높이 3m, 무게 45톤이나 되는 흰 수염 고래였고, 멸종되어 가는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서 1985년 잠정적으로 고래 사냥 금지령이 내렸다.

 

석남사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해발 1,240m의 가지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석남사는, 신라 41대 헌덕왕 16년(서기824년)에 중국에서 우리 나라에 최초로 선을 도입한 도의 국사가 창건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언양 현감 강웅이 사재를 내어 중창한 바 있으며, 석남사가 여승들의 수도장이 된 것은 6·25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것을 1957년 비구니 인홍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크게 복원하면서이고, 1973년 스리랑카 사타티짜 스님이 부처님 사리 3과를 모셔와, 2과는 가야산 묘길 산봉에 봉안하고, 1과를 이곳 3층석탑에 봉안하였고, 경내에는 보물 369호로 지정된 도의 국사 사리탑이 있다.

 

통도사 (양산군 하북면 지산리)

영추산 또는 영축산, 해발 1,058m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불교3보 사찰중 불보사찰이다. 불교의 3보는 불, 법, 승으로 불보 사찰은 통도사, 법보사찰은 합천 해인사, 승보사찰은 순천 송광사이고 신라 27대 선덕여왕(서기646년)때 자장율사가 당나라 청량산 문수보살상에 기도하여 계시를 받아 문수보살로부터 전래 받은 부처님의 정골 사리와, 불사리, 부처님이 입으시던 가사 한 벌을 받들고 귀국하여, 정골사리는 오대산에 묻고, 사리와 가사는, 당나라에서 계시 받은 대로 삼재를 면한다는 영취산에 아홉 마리 영이 사는 못에 구룡의 항복을 받아 못을 메워 절을 짓고, 금강 계단을 만들어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니 곧 통도사였다. 통도사라는 이름은 첫째 통도사가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님이 설교하시던 영축산과 모습이 통하므로 통도사요, 둘째,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이 계단을 통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이며, 셋째,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이름 붙였다 한다. 경내에는 보물144호인 대웅전과 국보 74호인 국장생 석표 또, 보물 334호인 은사입 향로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계곡을 따라 2㎞정도 가면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자장암이 있고, 자장암 법당 뒤 절벽에는 1천4백년을 살고 있다는 금개구리가 있어 통도사를 찾는 이는 한번쯤 찾아본다는데 불심에 따라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으나 신기하게도 통도사에 좋은 일이 있을 때 꼭 나타난다고 한다. 금개구리는 1400년 전 자장율사가 이곳에 처음 수도할 때, 공양미를 씻으러 우물가에 나가니 개구리 한 쌍이 우물 속에서 흙탕물을 일으키며 헤엄치고 놀아 잡아 다른 대로 보냈는데, 또 우물 속에 나타나 놀아 개구리를 자세히 보니 입과 눈가에는 금줄이 선명하고 등에는 거북모양 점이 있어 불연이 만든 개구리임을 깨닫고 절 뒤 절벽에 신통력을 부려 손가락으로 직경 2㎝, 깊이 약 10㎝의 구멍을 뚫어 그 안에 넣고, 언제까지나 죽지 말고 영원토록 살며, 자장암을 지키라고 하며, 금와라 부르니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 한다. 통도사, 신앙의 대상인 금강계단 사리함의 영이함은 누구나 사리를 첨례 공양하고자 사리함을 열면 법신의 향기가 산 내에 퍼져 여러 날 향기가 나며, 사람에 따라 사리가 보이기도 하고, 안보이기도 하고 밝게 빛나기도 하고, 순금색 또는 순옥색 또는 반은 금이며 절반은 옥이며 크기가 크다가 작다가, 나타남이 틀린다는 것이며 친견할 때 맑은 하늘에 금방 비가 내리기도 하며, 금방 개이기도 하고, 검은 구름이 깔리고 폭풍우와 우레가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는 사람들이 친견하고자 동구로 들어오면 금강 계단의 석종 위에 오색 광명이 비쳐, 동네의 산과 골짜기를 밝혀주며, 향과 초로 부지런히 공양하고 정진수도 하면 계단의 반상에 가는 모래알처럼 변신사리가 무수히 나타나며, 몸과 마음이 부정한 자가 그 주위에 나타나면, 그 사람만 비위상하는 고약한 냄새가 나서 곧 광란하며, 땅에 쓰러져 귀신의 말을 지껄이다 미친 사람이 되며, 금강계단 부도 석종위 여의 주석의 구룡반석 아래 우묵파인 곳에는 항상 물이 가득차 있고 그 가운데 한 쌍의 푸른 달팽이가 항상 붙어 있는데, 석종을 들 때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사람들이 헤어지면 전과 같이 나타나 있으며, 금강계단 위로는 일절 날짐승들이 날아가지 않고 그 주변에서는 시끄럽게 아니하고, 똥과 오줌을 누지 않는다는 신기한 이들은 범인들이 어찌 설명할 것인가, 그럼 실지 금강계단을 열어 본 사람을 소개한다. 고려 때 안렴사(지방장관) 두 분이 각각 금강계단에 예를 하고, 돌 뚜껑을 들고 사라함을 열어보니 첫 번 안렴사는 긴 구렁이가 함속에 있는 것을 보았고, 두 번째 안렴사는 큰 두꺼비가 쪼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 그후부터 감히 돌뚜겅을 열지 못하였는데, 고려 고종의 명을 받은 장군 김이생과 유시랑이 절에 와서 금강계단에 예하고, 뚜껑을 열고자 하니 스님이 그 전일을 들어 어렵게 이야기하니, 김이생과 유시랑이 군사에게 시켜 돌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 속을 보니 속에 작은 돌함이 있고 돌함속에 유리 통이 들어있는데 통속에 불사리 네과가 있었다. 모두가 경배하고 유시랑이 수정함을 기부하여 함께 간수하였으며, 옛날 기록에 보면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사리 100여과를 모셔왔는데 현재 네과만 확인 될 뿐 나머지는 어디에 묻었는지 알 수가 없다.

 

부처님의 가사

가사라는 것은 출가 스님들의 법복을 이야기하며, 원래부터 출가 스님들은 세 가지의 옷과 탁발용 발우 하나 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다. 통도사에는 자장율사께서 당나라에서 불사리와 부처님이 입으시던 가사를 모셔와 봉안하였는데, 고려 광종임금은 불심이 두터워, 통도사에 부처님의 가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친히 친견하고자, 통도사로 행차할 것을 중신과 의논하니 신하들은 왕이 궁을 비우면 백성이 불안해 하니 불가사를 가져오는 게 좋겠다 하여, 허락을 받은 대신 채경종이 교지를 받들어 절에 와서 예불하고, 봉함을 받들어 궁에 돌아오니 임금은 불전에 서원하고 보함을 열어보니 함속은 텅텅 비어 있었다. 크게 노한 임금이 채경종을 멀리 유배시키도록 명령하니, 신하들은 이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라고 하니 임금은 참회정진하고 함곁에서 17일을 떠나지 않고 정근하고 함을 열어보니 큰 뱀이 들어있어 다시 17일을 정근하니 꿈에 스님이 나타나 이곳에 있을 곳이 아니므로 통도사를 떠나지 아니했노라 하여 임금이 크게 놀라 참회하고 신하를 시켜 절에 보내었다. 절에 도착한 신하가 그 보함을 열어보니 가사가 있어 경배하였다 한다.

 

내원사 (양산군 하북면 용연리)

해발 812m의 천성산 계곡에 자리잡은 이 절은, 비구니의 수도 처이며 신라 문무왕 13년(서기673년) 원효대사가 동래군 불광산에 척판암을 짓고 수도하던 중, 천리안으로 보니 당나라 태화사 절에 천명의 스님이 장마로 인해 산사태가 곧 나서 다 죽겠는데, 모르고 기도만 하여 원효 스님이 큰 판자에 효척판구중 해동원효라 써서 판자를 당나라 태화사를 보고 하늘에 던지니까 그 판자가 태화사 마당을 날라 다니니, 놀란 스님들이 모두 나와 판자를 바라보는 순간 산이 무너져 그 튼 절이 매몰되었다. 위기를 면한 스님들이, 그 판자를 보니 해동 원효 스님이 자기들을 구해 주었는지라 천명의 스님이 모두 신라에 들어와 원효 스님을 찾으니 원효대사가 그들이 머무를 곳을 구하여 양산군 하북면 용연리에 이를 때 산신이 마중 나와 대사를 인도하여, 현 절 자리에 모시니 대사는 원효산에 원효암, 천성산 계곡에 내원암 등 89암자를 짓고, 이들을 분산 수도하게 하였으며 계곡이 깊고 험하여 급한 연락을 하기가 힘들었는데, 내원 계곡에 큰북을 달아 신호를 보내, 식사 때와 새벽 예불시간을 알려 주고 집회시간을 조정하였다 한다. 그해 여름 북을 치고 내려와 보니 시간이 넘었는데도 스님들이 늦게 도착하여 그 까닭을 물어본 즉, 골짜기마다 칡넝쿨이 너무 많아 걸음을 방해하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원효대사는 즉석에서 계곡의 칡넝쿨을 없애겠다 하며, 좌선의 자세로 법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반신반의하는 스님들에게 수 시간 후 이제는 칡넝쿨이 없어졌으니 법회에 늦지 않도록 하라고 하며 법당으로 들어갔다. 스님들은 혹시 하여 칡이 많이 우거졌던 곳에 가보니, 버석버석하며 모두 말라죽었더라. 그 후 뿌리까지 말라죽은 칡들은 천년이 지난 지금도 내원사 계곡은 칡들이 나지 않아 우리 나라 유일의 칡없는 산이며, 요즘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신비한 불력을 되새기며 계곡 곳곳을 헤매며 칡넝쿨을 찾아보았으나 없었다고 하고, 천 여명의 스님들이 좌선할 때는 반들반들한 머리가 햇빛이 반사되어 멀리 하북면까지 빛이 비쳤으며, 천명이 이곳에서 득도하였다하여 천성산이라 부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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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